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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필요 없다... 가성비 높은 비대칭 전력 ‘군집드론’

2019-09-27 76

[한국일보]

2019. 09.27

 

지난 15일 미 정부와 디지텉글로브가 공개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단지의 드론 공격 피해상황이 담긴 사진. AP 연합뉴스

지난해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무인기(드론) 쇼’였다. 인텔사의 380g짜리 소형 드론 ‘슈팅스타’ 1,218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하늘에 오륜기, 스노보더, 비둘기 형상을 수놓았고 관중은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축제가 아닌 전장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폭탄을 탑재한 ‘자폭드론’ 수백, 수천 대가 일제히 공격을 퍼붓는다면 재래식 무기가 손쓸 새도 없이 전장은 초토화될 것이다.


‘군집 드론(drone swarm)’이 미래 전장의 판도를 주도할 핵심적인 비대칭전력(Asymmetric Force)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곤충 떼처럼 집단을 이룬 드론이 서로 부딪치지 않게 날면서 작전을 수행하는 이 기술은 저비용 고효율의 드론 공격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뉴욕 바드대학 드론연구센터가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 ‘드론 데이터북(Drone Databook)’에 따르면 이미 군사용 드론을 보유한 국가의 숫자는 95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독점적 위치를 상실한 미국이나 중국 등 선발주자는 일찌감치 인공지능(AI) 시스템과 위성항법장치(GPS) 기능을 끌어올린 군집 드론 전술로 눈을 돌린 상태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5년에 시작한 군집드론 연구 프로젝트 그렘린(Gremlin)의 상상도. DARPA 홈페이지 캡처

 한 대에서 수십 대로… 변화하는 드론테러 양상  

기술의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군집 드론은 이미 중동 내 분쟁지역에서도 실재적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1월 러시아 군은 시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흐메이밈 공군기지가 현지 반군의 드론 군집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두 대가 아닌 무려 13대의 소형 자폭 드론이 일제히 공격에 동원된 건 이례적이었다. 비록 조악한 만듦새 탓에 기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격추당했지만, 군집 공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드론 테러 가능성을 경고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에서 또 한 번 비슷한 형태의 공격이 발생했다. 10대 이상의 자폭 드론이 사우디 국영기업의 최대 석유시설인 아브카이크 단지를 일제히 타격했다. 단지는 결국 멈춰 섰고, 사우디의 원유생산량이 반토막 나면서 유가가 출렁였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예멘 후티 반군은 자체 개발한 카세프(Qasef) 드론으로 사우디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무기시장의 ‘큰손’으로 유명한 사우디가 반군이 만든 조악한 드론의 집단 공격에 속수무책 당한 것이다.

 

생활 속 아이디어가 사업이 되다

 

군집 드론의 핵심은 ‘물량 공세’로 압축된다. 적의 고비용 고효율 무기체계에 대항하기 위해 단순 기능만을 갖춘 드론을 한꺼번에, 많이 보내는 것이다.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군집 드론의 양적 측면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적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많은 무기의 소비를 이끌어내고 △드론을 무리에 보충시키는 단순한 방법으로 전투력을 복원하고 생존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적의 일 대 일 요격 방어를 뚫고 목표물에 도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가난한 무장세력이 저렴한 드론 수십대로 군사 강국에 맞설 수 있는 건 이러한 원리에서다.

예멘 후티 반군이 보유한 공격용 드론인 카세프-1. 미국은 후티 반군의 드론 운용 배경에 이란의 지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알 마시라방송 연합뉴스

 제재 회피ㆍ은밀함ㆍ가성비 ‘3박자’ 갖춘 군집 드론  

하지만 군집 드론이 비대칭 전력으로서 가공할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보다 드론 자체가 가진 강점이 커서다. 첫 번째로 핵무기와 달리 개발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핵무기 개발로 국제 사회 제재에 직면했던 이란은 프랑스와 독일, 미국 등으로부터 드론 핵심 부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안보 전문 매체인 내셔널인터레스트는 2008, 2009년 독일제 항공기 핵심 부품 61개를 이란으로 몰래 반출하려 했던 이란계 독일인 2명이 기소됐다고 전했다. 이는 10여년 전 이미 이란의 공격용 드론 개발 정황이 명확하게 포착된 것으로, 이란은 결국 예멘 후티 반군 드론(카세프-2K)의 원형 격인 ‘아바빌-3’를 완성했다.

미국 군사전문 매체인 C4ISRNET은 “이란 등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 군집 드론 개발에 성공한 비결은 ‘오픈 마켓’”이라고 지목했다. 일반 시장에서 부품을 조달해 전투기를 만들 순 없지만, 낮은 수준의 공격용 드론의 경우 일반 상업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레저용 드론이나 일반 항공기의 부품으로도 제작할 수 있다. 비대칭 전력의 대명사인 핵무기를 개발하자면 국제 사회의 제재ㆍ압박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총력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드론 개발 과정에서 회피해야 할 제재망은 애당초 없었거나 느슨했다.

피격 당한 국가가 공격 주체와 원점을 즉각 파악하기 어려운 점 역시 비대칭 전력으로서 군집 드론의 매력으로 꼽힌다. C4ISRNET은 “국가 또는 부대가 아닌 팀 단위 정도의 주체만 있어도 운용할 수 있는 게 군집 드론”이라고 지적했다.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면, 발사 전 미사일 부대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발사 뒤엔 미사일 궤적이 남는다. 반면 팀 단위 운용 주체가 날린 드론 수십 대가 어디서 이륙했는지, 어떤 비행 루트로 왔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사우디 석유 시설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2주가 지나도록 사우디는 물론 미국 조차 이번 군집 드론 공격 출발 지점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드론 운용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군사용과 상업용 드론 기술 수준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격용 소형 드론 1대 가격은 수천만 원 수준일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사우디의 대표적 지대공 요격 미사일 체계인 패트리엇 포대 한 대가 1조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우디 석유시설에 공격을 가한 세력은 10만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사우디 대공방어망을 무력화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군집 드론 전력이 핵무기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동 지역 안보 전문가인 알리 배키에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맺어진 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이후 이란은 드론 전력화를 서두르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핵합의로 핵무기 개발을 더 이상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자, 미국 등 서방권을 견제할 대체품으로서 드론 전력을 집중 육성했다는 것이다. 그는 “작고 저렴하며 원시적인 이 무기는 강대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정교한 비대칭 전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강유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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